엄마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고 멍해진 날
작년 추석, 본가에 내려갔다가 엄마가 통장을 꺼내며 한숨을 쉬셨습니다. 국민연금에서 들어온 금액이 한 달 68만 원 정도였고, 아빠 것까지 합쳐도 130만 원이 채 안 됐습니다. 거기에 관리비, 보험료, 병원비 빠지고 나면 정작 식비랑 용돈으로 쓸 돈은 얼마 안 남는다고 하셨어요.

그날 저녁 거실에 앉아서 가만히 계산기를 두드려봤습니다. 두 분이 한 달에 실제로 쓰시는 돈이 대략 220만 원.
부족분 약 90만 원은 그동안 모아둔 적금에서 야금야금 빼서 쓰고 계셨던 겁니다. 저는 그제야 노후생활비라는 게 막연한 단어가 아니라,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진짜 숫자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머리가 멍했어요. 내 노후는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거든요.
일단 한 달에 얼마가 필요한지부터 적어봤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가계부 앱을 열고 지금 제 한 달 지출을 항목별로 쪼개봤습니다. 주거비, 식비, 통신비, 교통비, 보험료, 문화생활비, 경조사비까지. 합쳐보니 290만 원 정도가 나오더라고요. 여기서 노후에 줄어드는 항목이 뭔지, 오히려 늘어나는 게 뭔지 따져봤습니다.
줄어들 항목은 분명히 있습니다. 출퇴근 교통비, 점심값, 양복이나 구두 같은 직장 관련 지출, 자녀 교육비. 반대로 늘어나는 항목도 또렷합니다. 의료비, 건강기능식품, 경조사비, 그리고 의외로 관리비와 공과금.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전기요금이 확 뜁니다. 부모님 한 달 전기요금이 여름엔 12만 원 넘게 나온 적도 있다고 하셨거든요.
이것저것 빼고 더해보니 제가 60대 중반에 필요한 최소 생활비는 한 달 약 200만 원, 여유 있게 살려면 280만 원쯤이었습니다. 부부 기준이 아니라 1인 기준입니다. 국민연금공단에서 발표하는 적정생활비 통계와도 얼추 비슷한 수준이었어요.
국민연금만으로는 절반도 안 된다는 사실
국민연금공단 사이트에서 내 예상 수령액을 조회해봤습니다. 지금 가입 기간을 유지하고 60세까지 납부한다고 가정했을 때 매달 약 95만 원. 솔직히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잡은 최소 생활비 200만 원의 절반도 안 되는 금액이니까요.
그래서 부족분 100만 원을 어떻게 채울지 종이에 적어봤습니다. 일단 회사에서 매달 들어가는 퇴직연금 DC형이 있고, 개인적으로 5년째 부어온 연금저축펀드가 있습니다. 연금저축은 한 달 25만 원씩, 1년에 300만 원 한도까지 세액공제를 받고 있어요. 여기에 작년부터 IRP에 추가로 월 10만 원씩 넣기 시작했고요.
대략 계산해보니 65세부터 연금저축과 IRP에서 매달 40만 원 정도 나올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60만 원이 부족합니다. 이 부분은 주택연금이나 추가 저축으로 메워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한 번에 답이 안 나오는 게 당연하지만, 적어도 부족한 금액의 윤곽은 잡혔습니다.
완벽한 계획보다 매년 다시 적어보는 습관
처음 이 계산을 한 게 2026년 가을이었는데, 올해 다시 해보니 숫자가 또 달라졌습니다. 물가가 오른 만큼 필요 생활비도 올라갔고, 연금저축 수익률에 따라 예상 수령액도 변동이 있었어요. 그래서 1년에 한 번, 연말정산 시즌에 맞춰 노후생활비 계획을 새로 적어보는 걸 습관으로 만들었습니다.
거창한 엑셀 시트 같은 건 안 만듭니다. A4 한 장에 필요 생활비, 예상 연금 수령액, 부족분, 그걸 어떻게 메울지 네 줄로 적습니다. 그러고 나면 지금 당장 무엇을 늘려야 할지가 보입니다. 작년에는 IRP 납입액을 5만 원 늘렸고, 올해는 비상금 통장을 따로 만들었어요.
노후 준비는 한 번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부모님 통장을 보면서 배웠습니다. 매년 조금씩 숫자를 마주하고, 부족하면 조금씩 보태는 일. 그게 결국 시간이 지나면 큰 차이를 만든다고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