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생활비, 엑셀 켜놓고 한 시간 계산해본 날

퇴근길에 마주친 그 질문

작년 가을, 회사 후배가 점심 먹다가 던진 한마디가 며칠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선배는 노후에 한 달에 얼마 쓸 생각이냐는 질문이었는데, 저는 그 자리에서 한 300만원쯤 있으면 되지 않겠냐고 대충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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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urprising_Media / pixabay

그날 퇴근길 지하철에서 문득 그 숫자가 너무 막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리가 멍했습니다.

마흔이 넘었는데도 노후생활비라는 게 어떤 항목으로 구성되는지조차 진지하게 따져본 적이 없었던 겁니다.

그 주 토요일 오전에 엑셀을 켰습니다. 커피 한 잔 옆에 두고 한 시간쯤 항목을 적어 내려갔는데, 막상 숫자를 하나씩 박아넣다 보니 제가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300만원이라는 금액이 어디서 나온 건지 저도 설명을 못 하겠더군요. 그래서 그냥 지금 우리 집 한 달 지출부터 다시 봤습니다.

실제 항목을 적어보니 보이던 것들

먼저 현재 부부 기준 고정지출을 적었습니다. 관리비와 공과금 약 25만원, 통신비 두 사람 합쳐 9만원, 보험료 합산 32만원, 식비 60만원 정도.

여기에 자동차 유지비, 부모님 용돈, 경조사비, 의료비를 합치니 별 사치 없이도 한 달 280만원이 훌쩍 넘었습니다. 노후에는 자녀 교육비가 빠지니 줄어들 거라 막연히 기대했는데, 대신 의료비가 늘어난다는 점을 그때 처음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주변에 먼저 은퇴한 친척분 얘기를 들어보면, 60대 초반까지는 여행이나 취미에 돈을 꽤 쓰다가 70대 들어서면서 병원비 비중이 확 늘어난다고 합니다. 통계청 자료를 찾아봐도 65세 이상 가구의 의료비 지출이 다른 연령대 대비 두 배 가까이 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노후생활비를 한 덩어리로 보면 안 되고, 활동기와 의료비 집중기로 나눠서 계산해야 한다는 걸 그제야 이해했습니다.

30년치 총액을 구해본 충격

대략 부부 기준 활동기 월 270만원, 의료비 집중기 월 240만원으로 잡고 65세부터 90세까지 25년을 계산해봤습니다. 물가상승률을 연 2%만 보수적으로 잡아도 총합이 9억원을 넘어갔습니다. 처음 화면에 그 숫자가 뜬 순간 한참 멍하게 모니터만 봤습니다. 9억이라는 게 집 한 채 값인데, 이걸 따로 생활비로 마련해야 한다는 게 현실감이 안 들었습니다.

물론 국민연금이 부부 합산 월 130만원 정도 들어올 거라 가정하면 부담이 크게 줄긴 합니다. 25년치로 환산하면 4억원 안팎이 자동으로 메워지는 셈입니다.

그래도 나머지 5억원 가까운 금액은 개인연금이나 퇴직금, 다른 자산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연금저축계좌 납입액을 월 25만원에서 40만원으로 올렸고, IRP에도 분기마다 일정 금액을 추가로 넣고 있습니다.

계획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

한 가지 분명해진 건, 노후생활비 준비 계획이라는 말에서 진짜 핵심은 계획이 아니라 점검 주기라는 점입니다. 한 번 엑셀 두드리고 끝낼 일이 아니라, 1년에 한 번씩은 그 시트를 열어서 물가, 자산 평가액, 연금 예상수령액을 다시 넣어봐야 합니다.

저는 매년 1월 첫 주 일요일을 그 날로 정해뒀습니다. 작년 1월과 올해 1월에 두 번 돌려보니, 1년 사이에 예상 부족액이 약 3천만원 늘어 있었습니다.

물가 가정을 살짝만 올려도 그만큼 차이가 나더군요.

혹시 아직 노후 생활비 계산을 해본 적 없다면, 거창한 재무설계 받기 전에 그냥 토요일 오전 한 시간만 내서 엑셀을 켜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항목 적고 숫자 박아넣는 그 단순한 작업이, 어떤 책이나 강의보다 훨씬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막연한 불안이 구체적인 숫자로 바뀌는 순간, 그때부터 진짜 준비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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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logixhub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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